[고국여행기-16] 부산에서 울산으로 – 기차 여행의 묘미와 40년지기 '환진 형님'과의 재회
부산에서 너무 많은 것을 보고 간다.
부산역 바로 옆에 있는 호텔에 있다보니 부산역도 진짜 많이봤다. 그래서 올려드린다!
**부산역**과 건너편의 **차이나타운**의 밤과 아침 모습을 비교해 보시라고 올려드린다.
**물품보관함 사용**은 어떻게?
울산으로 가려하는데 부산역에서 물품보관함이 보인다. 울산역에 도착하면 기차역의 물품보관함을 사용해 볼 생각인데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아 우선 부산역에 있는 것은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해 본다.
물품보관함이 있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안내 표시를 해 두었고, 부산역의 경우 철도경찰이 있는 곳 바로 옆에 위치하여 안전하다고 생각되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감시 카메라도 장착되어 있고 안전장치가 잘되어 있었다. **빨간불**이 들어와 있는 것은 가방이 들어가 있는 보관함이고 **파란불이 들어온 곳이 보관이 가능한 곳**이다. 이제 대충 눈여겨 보았으니 기차를 타러간다.
기차 잘타는 노하우?
그런것은 없다. 표를 잘 살펴보고 표시판을 잘 보면 되었다.
이제 기차도 두 번째 타는 것이라 조금 익숙해졌다. 열차는 출발 15분 전에 입장 가능하다고 했지만
난 습관이 5분 더 일찍, 그래서 20분 전에 들어간다. (죄송합니다 잘 몰라서 20분 전에 입장합니다)
들어가는데 왠 중국인이 자신의 기차표를 보여주며 손짓 발짓으로 기차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 묻는다
세상에서는 늘 나 보다 힘든 사람이 있고 도와줄 사람들이 있다~
✔ 아래는 나같이 여행와서 기차를 처음 타는 분들이 도움이 될까하여 올려놓는다
👉 기차 표에 열차 번호(20)와 시간을 확인(09:06)하고
👉 **전광판**에 타는 곳이 적힌 것을 확인한다 => 6번이다.
맨 처음 기차 탈 때는 정신이 없었지만 지금은 무엇을 봐야할 지 안다
6번이 적혀있는 플랫폼으로 간다.
열차 타는 곳 6번이라고 적혀있다. 타는 플랫폼(Plataforma)이 6번이고
👉 그 다음, 표에 적혀있는 열차 번호(5호 차)와 좌석번호(6호)를 보는데
👉 내 열차가 KTX 또는 SRT 인지 살펴야 한다 (내 표에는 KTX) 라고 적혀있다.
기둥옆으로 KTX 호차라고 적혀있는 곳에 서 있으니 열차가 정확히 그 앞에 도착하였다
이렇게 열차를 바로 앞에 정확히 탈수있도록 편리하게 만들어 두어 정말 놀랍다!
난 5호열차의 좌석번호가 6A, 이곳으로 올라가면 된다.
문은 **유리문에 부착되어 있는 손잡이를 옆으로 틀어야** 했다.
좌석위로는 내 배낭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왠만한 캐리어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
기차 플렛폼에 엄청 많은 음료자판기
기차 타기 전 음료자판기가 많았는데 파우치에 넣은 아이스커피도 있다. 예전에는 뜨거운 커피만 있더니 요즘은 냉커피도 있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추운 겨울에도, 또 아침 일찍 빵집에서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많이 마시는 것을 보았다. 대단한 민족이다!
아침에는 뜨거운 것으로 배를 따뜻하게 해 주는 것이 좋은데 말이다~
기차의 좌석은 넓고 앞에는 선반이 있어서 편했다. 햇볕이 생기면 카텐을 내려 막을 수 있었다.
금방 울산에 도착하여 물품보관함을 찾아 배낭을 넣고 사진을 찍어두었다.
📌 넣어둔 보관함의 번호와 물품보관함이 어느 장소에 있는지 사진을 찍어두면 좋다.
여행기를 만들기 위해서 사진을 찍어두길 진짜 잘했다. 실제로 나중에 짐을 빼려고 했더니
보관함의 번호가 생각나지 않아 사진을 보고야 찾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비행기를 타면서 짐을 부칠 때도 사진을 찍어두는 것이 좋은데 요즘에는 내 가방의 짐표도 바꿔치기하여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범죄자들의 마약 운반 방법이 이렇다 한다.
이렇게 울산에 도착하여 내가 원하는 목적지로 가는데 이 **울산역을 통도사역**이라고도 부른다
버스는 어디서 타는지 표시도 잘 되어 있었다.
내가 가는 목적지는 세나요양병원이라고 하는 곳인데 내가 예전 한국에서 공부할 때 김재필 원장님 처럼 나를 많이 도와주시던 **김환진원장님**이 진료를 보고 계시는 곳이다.
1985년 김환진 형님과는 대학기숙사 캠퍼스에서 알게 되었는데 나만 공부가 힘든게 아니라 이분도 공부가 힘드신지 캠퍼스 잔디에서 술을 드신 후 넉두리하는 것을 들었고 당시 나도 그런 심정이었던터라 환진형님과 바로 마음이 통해 근처에 있는 곳에 막걸리를 하러갔다.
나는 술을 못해 처음 막걸리를 많이 마시고 너무 힘들었는데, 이 형님은 공부가 힘들다고 넉두리하신 것은 술기운이었고 원래부터 머리가 총명하신 분이셨나보다.
이후 김환진형님의 부탁으로 친구분 되시는 김재필형님과 가까워지면서 학업의 어려움을 많이 덜 수 있었다. 이런 발판이 김환진 형님에서 시작되었고 나는 크게 세 분(환진형, 재필형, 법진형)의 도움으로 어렵고 힘든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두 분만 뵙고 한 분은 못 뵈고 오게되었다.
1985년, 경주의 동국한의과 대학을 다닐 때 같이 찍은 사진. (재필형님, 환진형님 그리고 나)
울산에 도착하여서 환진 형님의 얼굴을 뵈었는데 점심으로 회를 사 주셔서 잘 먹었다.
그 원수같은 술로 인해 환진이 형님께서는 현재 몸이 조금 불편하신데 그럼에도 열심히 진료를 하시고 운동도 많이 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앞으로 더욱 건강하셔서 더 많은 사람들을 치료해 주실 것을 믿고.. 아쉬운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울산역으로 돌아와 동대구로 향한다.
환진이 형님이 울산에서 동대구는 버스로 가는 것이 빠르다고 하셨지만 배낭을 울산역 물품보관함에 넣어두어 다시 울산역으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울산역에서 동대구까지는 겨우 23분 밖에 안걸렸다. 그런데 울산역까지 버스가 1시간이나 걸렸다.
다음 이야기는 동대구 약령시와 '젊음의 거리' 동성로의 모습을 보여드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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